연안이씨와 노자

 

연안이씨(延安李氏)

이씨[李氏]의 시조는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로 부터 시작되고 일찍이 공자가 노자

[老子]라 존경하던 어른도 우리의 조상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말을 하

게 된 동기는 당[唐]나라 황제의 성씨도 이[李] 씨인데 황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그

뿌리를 거슬러 상고해 보니 그게 확실하게 고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삼황오제가운데

덕명황[德明皇]이신 고요[皐陶]씨가 이씨의 근본이 된다고 했는데 고요씨는 고기직설

[皐夔稷楔]이라는 중국의 4대 명가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처음 설[楔]의 후손인 은[殷],그리고 직[稷]의 후손인 주[周]에서 이[理]라는 벼슬을 세습

적으로 맡아 왔기로 성을 이[理]로 하였지만 앞서 노자로 불려지는 현원황제[玄元皇帝],

이 이[李耳]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李]라는 성을 갖게 되었는데 이분이 곧 노자[老子]십

니다.  

 

노자 (老子)

연안이씨의 원시조로 알려진 노자(老子)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묘, 허난 성 루이 현 사람으로 주왕을 섬겼으나, 뒤에

관직을 버렸다. 그는 중국에서 우주의 만물에 대하여 생각한 최초의 사람으로, 그가 발

견한 우주의 진리를 ‘도 (철학)‘라고 이름지었다. 그 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도교‘라

고 하며, 그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곧 ‘도’라고 설명하였다. 도는 성

질이나 모양을 가지지 않으며,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항상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우주 만물은 다만 도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에 지

나지 않는다. 모든 우주 만물의 형태는 그 근본을 따지면 결국은 17가지 진리에 도달하

게 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저서 <노자 도덕경> 속에 있는 ‘무위 자

연’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사람이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무위 자연’ 사상이다. 즉, 법률·도덕·풍속·

문화 등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의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도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후세에 ‘도교의 시

조’로 불리고, 그 사상은 ‘노장 사상’ 또는 ‘도가 사상’으로 발전하여 유교와 함께 중국 정

신 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노자의 말이라고 하여 오늘날 《노자》(老子

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상·하 2권 81장이 남겨져 있다. 거기서 기술되고 있는 사상은 확

실히 도(道)의 본질, 현상계의 생활하는 우수한[모호한 표현] 철학인 것이다. 예컨대 도

를 논하여 이렇게 말한다.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의 장(長)이

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10장). 이런 사고는 만물의 형성·변화는 원래 스스로 그러

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예정된 목적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노자의 말에 나

타난 사상은 유심론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펑유란은 도에 대해서는 사고방식은 일종의

유물론으로서 무신론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해는 뛰어난 것이다. 또 ‘도(道)는

자연(自然)을 법(法)한다'(55장)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자연계를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설명한 것이다. 이 이론은 유가(儒家)의 천인감응(天人感應)

적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자가 보인 인생관은 “유약한 자는 생(生)의 도(徒)

이다” (76장). “유약은 강강(剛强)에 승한다.”(36장)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

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그러면서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때문에

도에 가깝다”(8장), “천하의 유약하기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78장) 등의 구절에서 보

듯이 어디까지나 나를 내세우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 세상과 함께 사는 일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상을 겸하부쟁((謙下不爭) 이라고 하는 말로써 환언(換言)하고 있다.

노자는 또 “도(道)는 일(一)을 생하고 일은 이(二)를 생하고 이는 삼(三)을 생하고 삼은

만물을 생한다.”(42장)고 하는 식의 일원론적인 우주생성론을 생각하고 있었다.

          <위키피디아 “노자” 의 내용 중에서 발췌 했음>

 

다음 강의한 다음 동영상을 통해 노자와 생애와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노자는 누구인가?

노자, 현대인의 가슴에 외치다.

현대철학자 노자 1강

현대철학자 노자 2강

 

연안이씨 시조

   

연안 이씨(延安李氏)의 시조(始祖) 이무장군  

이무(李 茂)는 본래 당(唐)나라 출신으로, 고종(高宗 : 당나라 제 3대 왕, 재위기간 : 650 ∼

683)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다가 660년(신라 태종무열왕 7년 나당(羅唐) 연합군 대

총관 소정방(蘇定方)의 부장(副將)이 되어 신라에 들어와 백제(百濟)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졌고, 그 후 신라에 귀화하여 살게 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

를 시조로 받들고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연안(延安) 땅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

습니다. 연안(延安) 은 황해도(黃海道)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1914년에 백천군(白川

郡)과 합하여 연백군(延白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조로부터 614년간의 상계(上系)

가 삼별초난의로 실전(失傳)되고 정확한 계대(系代)를 알지 못하여 후손들은 첨사공파

(詹事公派), 소부감공파(少府監公派), 부사공파(副使公派)로 나뉘어 계대(繼代)하였으

며 저 이화국은 오봉(五奉) 지(漬)를 중시조(中始祖)로 모시는 부사공파(副使公派)에 속

합니다.

연안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250명, 상신 8명, 대제학 7명, 청백리 6명을 배출하였

습니다. 연안이씨의 3대파 중에서도 판소부감사공파가 단연 뛰어나 상신 8명, 대제학 6

명, 청백리 1명, 공신 10여 명을 배출하였고, 통례문사공파에서 대제학 1명, 청백리 2명,

태자첨사공파에서 청백리 2명이 나온 명문 집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공의 제5대 충간공(忠簡公) 숭원(崇元)을 새로운 중시조로 모시고 분파한 충간공파

기도 합니다. 

부사공파의  23세를 전후로 한 행렬자(行列字)는 다음과 같습니다. 19세: 성(性), 20세:

균(均), 21세: 현(鉉), 22세: 영(永), 23세: 화(和), 24세: 응(應), 25세: 원(遠), 26 세: 선(善),

27세: 순(淳), 28세: 동(東), 29세: 태(泰), 30세: 중(重), 31세: 호(鎬), 32세: 하(河), 33세:

병(柄), 34세: 희(熙), 35세: 규(圭)

한편 시조 무(武), 중시조 부사공(副使公) 지(漬)에서 23세까지의 제 계보는 다음과 같습

니다.

# 시조(始祖): 무(武) (단기 3053년/ 서기 720년) 

# 1세(중시조): 지(漬) – 부사공(副使公) { 지 } 오봉(五奉) (단기 3693년/ 서기 1360년) [부인: 전의 이씨] 

# 2세: 계손(係孫) –문창공(文昌公) { 계손 } [경주 이씨]

# 3세: 양(亮) – 감정공(監正公) { 양}[영천 최씨]

# 4세:백겸(伯謙) -보주공(甫洲公) { 백공, 백겸, 백문, 백인, 백충 } [온양 박씨] 

# 5세: 보정(補丁) –연천군(延川君) { 보민, 보정, 말정 } [완산 이씨]

# 6세: 숭원(崇元)(중시) – 충간공(忠簡) { 숭경, 숭원, 순윤 } [곡성 염씨]

# 7세: 만령(萬齡) – 부사공(府使公) { 만령, 구령 } [전주 이씨]

# 8세: 계륜(繼倫) – 현감공(縣監公) { 계륜, 계증, 계수, 계영 } [ 경주 ?씨]

# 9세: 제(霽){ 뇌, 제, 당 } [전의 이씨]

# 10세: 충남(忠男) – 목사공(牧使公) { 충남 } [전의 이씨]

# 11세: 요(橈) – 사용공(司勇公) { 요(橈): 익산 현동/ 즙(楫)-부사공: 한성, 수색} [우주 황씨]

# 12세: 시림(時琳) { 시진, 시림 } [은진 송씨 }

# 13세: 방노(邦老) { 방노, 방필, 방적, 방무, 방웅 } [평강 체씨]

# 14세: 정채(廷泰) { 정태 } [전주 최씨]

# 15세: 명억(命億) { 명억, 명현 } [풍천 임씨]

# 16세: 징(澄) { 함, 윤, 징 } [기장 이씨]

# 17세: 수길(遂吉) {수정, 수길} [부여 서씨/ 강화 최씨]

# 18세: 윤교(允敎) { 안교, 지교, 이교, 윤교 } [광산 김씨]

# 19세: 우성(禹性) { 우성 } [고흥 유씨]

# 20세: 제균(濟均) { 제균/ 아호(雅號): 동곡(東谷) } 1867. 11.7. ~ 1895. 7.

   27(28세) [연일 정씨: 1867. 2. 1. ~ 1923. 9. 17(56세)]

# 21세: 현기 1983.11.15.~1965.11.10.

# 22세: 父/무영(武永) 1925.8.15 ~1960.7.7(음), 母/심계순 1926.5.28~1960.7.7(음)

# 23세: 화국(和國) 1947.7.29(음) ~,  최숙재(崔淑載) 1948.12.1.

# 24세: 현응(賢應) 1974. 6.29, 진하(珍河)

   

연안이씨의 중시조 충간공 이숭원

 

이숭원(李崇元 : 1428[세종 10]∼1491[성종 22])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

(延安). 자는 중인(仲仁)이다. 숭원은 세종 10년(1428)에 참판 보정(補丁)의 차남으로 태

어났다. 그는 단종 원년(1453)에 25세의 나이로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사

재감(司宰監) 주부(主溥)로부터 정언(正言)을 거쳐 1459년(세조 5) 사헌부지평이 되었

다.

 이듬해 설화사건으로 파직당하였다가 형조정랑에 재등용되고, 이조정랑·세자문학·

성균관사예·중서사인(中書舍人)·사헌부집의가 되었다. 1468년 장례원판결사로 승진하

고 이듬해 동부승지, 이어 좌승지가 되었다. 성종 즉위에 공이 있어 1471년(성종 2) 좌리

공신(佐理功臣)3등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加資)되고 연원군(延原君)에 봉하

여졌다.

이듬해 도승지가 되고, 1474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형조판서, 1477년 대사헌, 그리

고 한성부판윤을 거쳐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1485

년 우참찬이 되어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좌참찬이 되어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오르고 1489년 다시 형조판서를 지낸 뒤 1491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고, 1648년(인조 26) 지례의 도동사(道東祠)에 제향되었다.

홍귀달(洪貴達)이 지은 비명이 이렇게 전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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